북유럽 르네상스 미술
15세기 북유럽 미술가들은 이탈리아의 표현양식과 사고방식을 무시하고 오로지 플랑드르 화가들을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영향이 세차게 밀어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후기 고딕 양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지만, 이탈리아적인 양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 고딕양식과 이탈리아적인 양식을 둘러싼 논쟁이 끝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에서 이와 같은 두 가지 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예술가들
- 그뤼네 발트: 그뤼네발트의 상상력은 후기 고딕에 머무르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결코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기 고딕 양식의 원근법을 사용하여 단단하고 완강한 인물 표현을 선보였습니다. 그가 이탈리아적 사고방식을 이용한 이유는 꿈과 환상의 세계에 현실성을 부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젠 하임 제단화>는 안팎 양면에 그림을 그린 거대한 4장의 패널로 구성된 그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대단히 중세적이며 느껴지는 고뇌와 슬픔은 중세 독일의 <피에타>를 떠오르게 합니다.
- 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의 화가, 판화가, 미술 이론가로서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이자 최고의 대가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뒤러는 뉘른베르크의 금세공인 가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소묘와 인쇄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는 목판화, 동판화, 수채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뒤러는 그가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몇 점의 수채화를 남겼는데 이 수채화에는 자연을 만끽하며 느낀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정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후에 유럽 풍경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1498년에 발간한 목판화 연작인 <요한 묵시록>은 뒤러의 삶뿐만 아니라 유럽 목판화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작품은 총 16점으로, 각각 기술적 완성도와 화면 구성에서 뛰어난 작품입니다. 작은 크기의 수난 연작, 커다란 크기의 수난 연작, 마리아의 삶, 성 삼위일체, 성 그리스토프, 안나와 함께 있는 성가족, 묵주를 들고 있는 요아힘 등은 그의 작품입니다. 이 시기에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활용하여 판화를 제작하는 시도를 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 <성녀 베로니카>, <고통을 겪는 구세주>, <참회하는 성 히에로니무스>등의 작품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는 판화 기술을 이용하여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고, 이를 통해 판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작은 풀 한 포기라도 자세하게 표현하는 아주 섬세하고 탁월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채화를 그렸으며, 평생 인체 비례 연구에도 몰두하여 1504년에는 최초로 인체 비례를 적용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뒤러는 후기 고딕양식의 원근법을 구사한 <아담과 이브>를 그렸고, 그의 뛰어난 에칭 기술은 이후 렘브란트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작품 <아담과 이브>는 같은 주제로 동판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판화에서는 고전적 균형을 볼 수 있지만, 그림에서는 감각 위주로 표현한 고딕적인 인체 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4 성도> 작품은 독일이 종교 개혁이 한창일 때 그려졌으며, 독일 회화의 수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요한과 베드로, 오른쪽에는 바울과 마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네 명의 사도는 놀라올 만큼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뒤러는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의 자화상을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와 비슷하게 다룬 점이 특징입니다. 예수의 얼굴과 닮은 자화상은 예술가의 창조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적 사고방식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또한 자화상의 얼굴을 완벽한 균형의 이론에 의해서 구성했습니다. 뒤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목판화로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것은 서양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병약한 인물을 그린 혁신적인 시도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한스 홀바인은 독일의 화가로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아 고전적 화풍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한스 홀바인은 종교 개혁에 휘말려 영국으로 건너가 국왕 헨리 8세의 궁정 화가로 활약했습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세부 표현에 빠져 있던 북유럽적 성격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대함과 견실성을 교묘하게 조화시킨 초상화에 나타나 있습니다. 홀바인은 뛰어난 관찰력과 정교한 구성, 그리고 예리한 세부 묘사를 부드러운 색감으로 잘 나타냈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사실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인물의 성격까지도 표현했습니다. 그의 작품 <대사들>에서는 인물의 학식을 강조하기 위해 책과 같은 도구들을 함께 그려냈습니다. 또 다른 작품 <마이어 시장 일가와 함께한 성모>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마이어 시장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인물들이 이루는 대각선은 오른쪽으로 약간 고개를 돌리고 있는 성모 마리아 때문에 균형이 유지되는데, 이것은 한스 홀바인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풍부한 색채가 돋보이면서 인물 주위에 여러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음으로 해서 인물의 성격까지도 암시적으로 나타낸 <독일 상인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 작품이 있습니다. 죽음은 14세기부터 미술 작품에서 빈번히 다루어진 소재 중 하나였는데, 한스 홀바인 또한 죽음을 주제로 한 <죽음의 무도>를 연작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흑사병과 전쟁에 대한 깊은 공포와 불안을 반영한 것으로, 속세의 삶과 쾌락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스 홀바인은 이 연작으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 브뤼겔은 플랑드르의 거장으로 현세적인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입니다. 그는 비관적이고 허무한 삶을 그린 우화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 <낙원>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각종 음식이 많이 쌓여 있고, 왼쪽 집의 지붕도 파이로 만들어져 있고, 나이프를 등에 꽂고 먹어 달라고 돌아다니는 돼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진해서 식욕의 노예가 되어 동물적인 충족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존심을 모조리 버리고 있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미술의 모든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로크 미술,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 (0) | 2024.03.24 |
---|---|
바로크 미술, 이탈리아, 플랑드르, 스페인과 함께 (0) | 2024.03.23 |
미술 더하기 역사, 르네상스 매너리즘 (0) | 2024.03.21 |
미술 더하기 역사, 르네상스 중기 (0) | 2024.03.20 |
미술 더하기 역사, 르네상스 초기 (0) | 2024.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