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미술, 이탈리아, 플랑드르, 스페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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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모든 것

바로크 미술, 이탈리아, 플랑드르, 스페인과 함께

by 시티시티 2024. 3. 23.

바로크 미술, 이탈리아, 플랑드르, 스페인

 바로크는 변칙적인, 삐뚤어진, 기이한 이라는 뜻을 띠고 있는 말로, 이 전 시대의 차갑고 고요한 양식과는 대조적으로 활기찼던 17세기의 미술을 가리킵니다. 종교 개혁 운동이 끝단에 이르면서 종래의 가톨릭 교회와의 갈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반 종교 개혁 운동으로 인해 가톨릭 교회는 다시 세력을 회복하며 안정을 되찾았고, 교회 건물과 궁전이 더욱 많이 건립되고 과감하게 장식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17세기 당시의 로마는 마치 용광로처럼 유럽 북부과 남부,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융합되면서 유럽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바로크 미술은 화려하고 역동적인 움직임과 감정을 작품에 담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조명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작품에 깊이와 동적인 느낌을 부여했으며 생생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감정적인 효과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현실적인 요소와 상상력을 결합하여 실제보다 환상적이고 풍부한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종교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바로크 미술에서는 영웅적인 존재나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영웅처럼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군중들에게 영광스러운 감정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바로크 미술의 예술가들

1.카라바치오는 북부 이탈리아의 화가로, 자연의 현실적 표현에 주안점을 둔 화가입니다. 카라바치오는 순간의 동작을 정확하게 포작 하고,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무대감독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비쳐 밝은 빛이 반사되는 부분과 어두운 그림자 부분을 대비시킨 최초의 화가입니다. 카라바치오의 작품 <도박꾼들>에서 트럼프 놀이를 하고 있는 병사들은 로마의 선술집에서 흔히 보게 되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의 젊은 도박꾼은 몇 장의 트럼프카드를 감추고 있는데, 같은 패거리의 신호를 받고 트럼프 한 장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사히 속여 넘길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싸움이 시작될 것인지 카라바치오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고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 현실 모습 그대로의 재현인 것입니다. 또 다른 작품 <성 마태의 소명>에서 카라바치오의 자연주의는 반종교개혁 운동 이후, 가톨릭의 새로운 신앙과 일치합니다. 종교적 신비성은 더 이상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를 통해 포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직감적으로 나타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카라바치오는 일상적이며 인간적으로 종교에 접근하였습니다. 이런 카라바치오의 영향이 플랑드르,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에 짙게 남아 있게 됩니다.

2.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는 17세기 최고의 조각가이며 건축가입니다. 그의 작품 <다윗>은 미켈란젤로의 <다윗>과 비교하게 됩니다. 두 작품 모두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지만, 각각의 예술가가가 다른 시대와 다른 예술적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6세기 초반에 활동한 화가이고 베르니니는 17세기 중반에 활동한 예술가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다윗>은 고요한 내적 집중을 강조하며 전투에 대한 각오와 용기를 나타냈고, 다윗이 던질 준비를 하는 포즈가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베르니니의 <다윗> 미켈란젤로의 다윗보다 훨씬 강렬하고 공격적인 느낌을 주며, 몸의 움직임과 긴장된 근육은 전투의 긴장감을 강조합니다. 또한 다윗의 몸과 옷에는 흐르는 동적인 움직임이 표현되어있습니다. 베르니니의 <다윗>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골리앗의 존재가 느껴지며, 다윗은 온갖 힘을 기울여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를 다물고 결과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몸짓에 의해 생겨난 에너지는 마치 골리앗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 그와 보이지 않는 공간 사이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처럼 바로크 미술의 조각은 주변 공간을 보다 긴장되고 활기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르네상스의 조각과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3. 루벤스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남부의 지역을 뜻하는 플랑드르의 화가로 17세기 북유럽의 바로크 미술 양식을 앞장서서 이끈 화가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8 동안 머무르며 전성기 르네상스의 걸작과 카라바치오와 카라치의 작품을 연구해서 이탈리아의 전통을 흡수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플랑드르로 돌아와 궁정화가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예술적 재능과 지식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유럽 각국의 왕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그는 당대 유럽의 화단에서 제일 가는 화가로 인정받았습니다. 루벤스가 그린 대형 제단화 <십자가를 세움>에는 미켈란젤로의 억세고 완강한 육체와 티치아노의 선명한 색채와 대담한 화법, 그리고 카라바치오의 극적인 채광이 발견됩니다. 화면의 가장자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확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동적인 육체의 피라미드 구도가 주목됩니다. 이러한 피라미드 구도는 당당한 힘이 발산되는 느낌을 줍니다. 루벤스에게는 정지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에너지는 형상에서 형상으로 엇갈려 나가면서 열풍처럼 화면을 흔들고 지나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결집되고 있습니다. 루벤스의 다이나믹한 화법은 교회와 궁전의 장식을 위한 대규모의 장식화에서 절정을 달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유명한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마리드 메디치> 있습니다. 작품은 하늘도 바다도 대지도 번쩍거리는 빛과 넘치는 색채에 의해 왕비의 무사한 도착을 축하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루벤스작품-마르세이유에 도착한 마리드 메디치

 

3.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7세기 에스파냐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초기에 그는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을 주로 그렸지만, 나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풍속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풍속화는 서민의 생활을 아주 사실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24세 때에는 궁정 화가가 되어 주로 왕의 가족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는 당시의 에스파냐 국왕인 펠리페 4세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으며 궁정의 중요한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벨라스케스가 남긴 수많은 초상화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흥미로운 작품인 <시녀들>이 있습니다. <시녀들>은 여러 명의 젊은 여성이 나열된 형식으로, 그들은 서로 다른 포즈와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시녀들은 일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거나,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능숙한 화가로서의 기량과 뛰어난 관찰력을 잘 보여줍니다. 또 다른 작품 <거울 앞의 비너스>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함께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비너스의 초상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활발한 붓놀림과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는 표현 스타일은 후에 인상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